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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아무 일정이 없는 오후입니다.
커피를 한 잔 내려놓고
소파에 앉습니다.
오늘만큼은 조금 쉬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몇 분 지나지 않아
머릿속에서 하나씩 떠오릅니다.
답장하지 않은 메시지.
정리해야 할 서랍.
읽어야 할 책.
미뤄둔 일.
그러다 휴대폰을 들고 다른 사람의 하루를 봅니다.
누군가는 운동을 했고,
누군가는 공부를 했고,
누군가는 새로운 일을 시작했습니다.
나는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아까까지 편안했던 소파가
조금 불편해집니다.
‘나도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몸은 쉬고 있는데
마음은 다시 일하기 시작합니다.

몸이 먼저 멈추는 날도 있습니다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 체조선수 시몬 바일스가 경기 일부를 포기했을 때
많은 사람이 놀랐습니다.
정상의 선수가
가장 중요한 무대에서 멈췄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녀는 자신의 상태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마음과 몸이 서로 맞지 않는다고.
이후 그녀는 치료를 받으며 자신을 돌봤고,
시간이 지나 다시 체조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평범한 우리의 하루를
올림픽 선수의 상황과 같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 장면에서 한 가지 생각이 남습니다.
내가 멈추지 않으면
몸이 먼저 멈추는 날이 오기도 한다는 것.
우리는 몸이 피곤하다는 걸 몰라서
계속 움직이는 게 아닙니다.
알면서도 움직이는 날이 더 많습니다.
“피곤하다”와 “쉬어도 된다” 사이
몸에서는 이미 신호가 옵니다.
눈이 무겁고,
집중이 잘되지 않고,
잠깐만 누워 있고 싶습니다.
그래서 쉽니다.
그런데 마음 한쪽에서는 계속 계산합니다.
‘한 시간이나 쉬었네.’
‘오늘 한 게 별로 없는데.’
‘이 시간에 이것 하나라도 해놓을걸.’
이상합니다.
몸은 휴식을 필요로 하는데
마음은 휴식의 자격을 심사합니다.
오늘 충분히 열심히 살았는지.
해야 할 일을 다 했는지.
남들보다 뒤처지지는 않았는지.
그 심사를 통과해야만
비로소 편하게 쉬어도 되는 것처럼요.
휴식을 낭비라고 생각하면 실제로 덜 쉽니다
찾아보니 이 마음을 흥미롭게 보여준 연구가 있더라고요.
2021년에 발표된 연구인데, 네 차례의 실험에 모두 1,310명이 참여했습니다.
여가를 낭비이고 비생산적인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실제 여가활동을 덜 즐기는 경향을 보였대요.
특히 특별한 목적 없이 그 자체로 즐기는 활동에서
차이가 더 뚜렷했습니다.
연구진은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참가자들에게 여가가 낭비라는 생각을 먼저 심어준 뒤
재미있는 영상을 보게 했더니,
같은 활동에서도 즐거움을 덜 느꼈다고 합니다.
휴식을 바라보는 생각이
휴식 안으로까지 따라 들어온 것입니다.
같은 연구에서 여가를 낭비로 보는 믿음은
낮은 행복감, 그리고 더 높은 우울·불안·스트레스 보고와도 관련이 있었습니다.
다만 이건 함께 나타나는 경향이라
그 생각이 그런 상태를 직접 만든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이 연구를 보며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분명 쉬려고 누웠는데
머릿속에서는 계속
‘이래도 되나.’
하고 있는 순간.
시간은 쉬는 시간으로 기록되지만
마음은 한 번도 완전히 쉬지 못합니다.
쉬는 시간까지 쓸모가 있어야 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시간을 이렇게 나누기 시작했는지도 모릅니다.
잘 쓴 시간.
낭비한 시간.
무언가를 만들어낸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
하루가 끝나면 눈에 보이는 결과를 셉니다.
운동을 했는지,
공부를 했는지,
집을 정리했는지,
몇 가지 일을 끝냈는지.
반면 창밖을 오래 바라본 시간,
천천히 걸었던 시간,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던 시간,
누워서 천장을 보았던 시간에는
남겨진 결과물이 없습니다.
그래서 쉽게 사라진 시간처럼 느껴집니다.
여기에는 조금 미묘한 함정도 있습니다.
휴식이 중요하다는 말을 듣고 나면
우리는 휴식마저 생산적으로 만들 때가 있습니다.
‘쉬어야 집중력이 좋아지니까.’
‘쉬어야 내일 일을 더 잘하니까.’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집니다.
휴식도 결국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걸까.
산책하면서도 팟캐스트를 듣고,
목욕하면서도 강의를 듣고,
휴가를 가서도 책 한 권은 읽어야 할 것 같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괜히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찾습니다.
쉬는 시간마저
무언가를 얻어야 하는 시간이 됩니다.
그러면 일은 멈췄지만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마음에서는
아직 나오지 못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잘 쉬는 것도 숙제가 된다면
그렇다고 이제부터
‘제대로 쉬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휴식마저 새로운 과제가 되어버릴 테니까요.
30분 명상하기.
하루 한 시간 산책하기.
디지털 디톡스 하기.
그것들을 지키지 못한 날
또 자신을 평가하기 시작한다면 조금 이상합니다.
잘 쉬지 못했다고
또 나를 혼낼 필요까지 있을까요.
어떤 날에는 정말 편안하게 쉴 수도 있고,
어떤 날에는 누워서도 계속 생각이 날 수 있습니다.
그런 날에는
‘나는 왜 이렇게 쉬지도 못하지?’
보다
‘나는 왜 지금 가만히 있는 걸 불편해하고 있을까?’
를 물어보는 편이 내 마음에 조금 더 가까워 보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소개할 때도
주로 하고 있는 일로 설명합니다.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얼마나 해냈는지,
어디까지 왔는지.
그래서 멈추면 조금 낯설어지는지도 모릅니다.
일을 하고 있지 않은 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지 않은 나.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지 않은 나.
그냥 창가에 앉아 있는 나.
저도 쉼이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쉬는 법을 몰라서
쉬면 오히려 불안했습니다.
그런데 지내다 보니
쉼에도 때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쉼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도요.
몸의 쉼과 마음의 쉼.
몸은 누워 있는데
마음은 계속 서 있던 날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오후가 남기는 것
모든 휴식이
다시 더 잘 뛰기 위한 준비여야 하는 건 아닐 겁니다.
어떤 오후는 아무 결과도 남기지 않아도 됩니다.
커피가 식어가는 동안 창밖을 보고,
몸을 한번 길게 늘이고,
한참을 가만히 있어도 됩니다.
그 시간이 내 이력에 한 줄도 더해주지 않더라도요.
어쩌면 쉬는 법을 잊어버렸다는 건
누워 있는 방법을 잊어버렸다는 뜻이 아니라,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는 나와
함께 있는 법을 잊어버렸다는 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잠깐 멈췄을 때 마음에서 가장 먼저 어떤 말이 들려왔나요?
그 말은 누구의 목소리였는지.
나는 쉬는 시간을 무엇으로 계산하고 있었는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에게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지.
참고자료
Tonietto, G. N., Malkoc, S. A., Reczek, R. W. & Norton, M. I. (2021). Viewing leisure as wasteful undermines enjoyment.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97.
시몬 바일스의 2021년 도쿄올림픽 기권과 이후 복귀에 관한 보도.
※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이며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쉬어도 회복되지 않는 피로나 무기력이 오래 이어진다면 전문가와 이야기 나눠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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