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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인데 왜 아주머니라고 했을까?" 사랑이 온다 14회, 한결의 마음을 심리학으로 보면

미랄 2026. 9. 7. 13:40

목차


     

    "엄마인데 왜 아주머니라고 했을까?" 사랑이 온다 14회, 한결의 마음을 심리학으로 보면

    엄마라고 부르던 사람을 어느 날 갑자기 '아주머니'라고 부르게 된다면, 그 아이의 마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드라마 〈사랑이 온다〉 14회에서 한결은 자신의 출생에 관한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동안 한결에게 규림은 너무나 당연한 엄마였다. 함께 먹고 자고, 아플 때 돌봐주고, 하루하루를 함께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데 자신이 엄마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한결이 알고 있던 가족의 이야기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결은 규림을 밀어내듯 '아주머니'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이 장면이 단순한 배신감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입양과 정체성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니 조금 다른 질문을 하게 됐다. 한결에게 흔들린 것은 엄마에 대한 믿음만이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기 자신의 이야기였던 것은 아닐까.

    그럼 나는 누구야

    우리는 자신을 설명할 때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사용한다. 나는 누구의 딸이고 아들인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누구를 닮았는지, 어떤 가족 안에서 자랐는지. 이런 이야기들이 모여 나를 이해하는 하나의 틀이 된다.

    입양인의 경험을 다룬 연구에서도 자신의 생물학적 배경에 대한 지식과 가족 안에서 입양을 어떻게 이야기하는가는 정체성의 문제와 연결되어 다뤄져 왔다. 다만 조심할 부분도 있다. 입양에 대한 정보를 많이 공개한다고 자동으로 건강한 정체성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성인 입양인 15명을 인터뷰한 2019년 연구에서도 개방성과 정체성의 관계는 개인의 상황과 성장 과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고정되지 않은 관계로 나타났다.

    그러니 한결의 마음을 "출생의 비밀을 알아서 상처받았다"라고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런 질문들이 한꺼번에 시작됐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엄마가 나를 낳지 않았다면 나는 누구일까, 나를 낳은 사람은 누구일까, 왜 나는 지금까지 이것을 몰랐을까. 물론 이것은 드라마 속 한결의 실제 생각이라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이라는 관점에서 이 장면을 읽어보는 하나의 해석이다.

    엄마를 사랑하면 친부모는 궁금하면 안 될까

    입양인의 경험을 다룬 한 강연에서 특히 마음에 남은 관점이 있다. 우리는 입양을 이야기할 때 자꾸 둘 중 하나를 선택하려 한다. 키워준 부모가 진짜 부모다, 혹은 그래도 나를 낳은 부모가 중요하다. 그런데 꼭 둘 중 하나여야 할까.

    내가 참고한 입양 당사자의 경험은 이를 '그렇지만'이 아니라 '그렇고 또한'의 세계로 설명하고 있었다. 이 관점으로 한결의 마음을 생각해보면 조금 다르게 보인다. 나는 나를 키워준 엄마를 사랑한다, 그리고 또한 나를 낳은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할 수 있다. 나는 지금의 가족이 소중하다, 그리고 또한 내가 몰랐던 출생의 이야기에 혼란스러울 수 있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지우지 않는다는 것, 이 부분이 참 중요하게 느껴졌다.

    우리 엄마니까 사랑하는 거예요

    또 하나 참고한 자료는 입양가정 상담 장면이었다. 그곳에서 부모는 "아이들이 더 좋은 환경의 엄마 아빠를 만났다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요"라고 걱정한다. 상담자는 행복을 물리적인 조건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답한다. 아이에게는 조건이 더 좋은 엄마라서 지금의 엄마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엄마'이기 때문에 형성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다시 한결과 규림을 생각해봤다. 출생의 진실을 알게 됐다고 함께 살아온 8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규림이 한결을 돌보았던 시간도, 한결이 규림에게 느꼈던 애착도 그 사실 하나로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8년이나 키워줬는데 감사해야지"라며 한결의 혼란을 덮어버리는 것도 답은 아닐 것이다. 사랑받았다는 사실과 자신의 출생을 알고 싶다는 마음은 서로 경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자신의 뿌리를 묻는다면

    여기서 심리학 연구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입양인 119명과 양어머니를 청소년기부터 초기 성인기까지 살펴본 미네소타-텍사스 입양 연구에서는 입양과 관련된 정보를 찾으려는 정도가 성장하면서 변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청소년기에서 초기 성인기로 넘어가는 동안 정보 탐색이 늘어난 입양인이 62.2퍼센트였고, 청소년기에 부모가 입양에 대해 얼마나 개방적으로 소통했는지는 초기 성인기의 정보 탐색과 유의미하게 관련돼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개방적인 소통은 단순히 "너는 입양됐어"라고 사실 하나를 알려주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아이가 입양에 대해 느끼는 여러 감정을 부모가 받아들일 수 있는지, 아이가 친생가족과 연결되어 있다는 현실을 부모가 편안하게 받아들이는지, 아이의 발달 단계에 맞춰 입양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지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성인 입양인 179명을 대상으로 한 다른 연구에서도 부모의 개방적인 의사소통은 입양인의 정체성 작업, 그리고 입양과 친생부모에 대한 정서와 관련되어 있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하나의 정답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궁금해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질문에 대한 완벽한 답보다
    "네가 궁금해해도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인지도 모른다.

    진실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보다

    참고한 상담 자료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있다. 입양한 아이가 "나를 낳아준 엄마가 나를 버린 거야"라고 물을 때, 부모는 무조건 아름다운 이야기로 바꾸기보다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사실을 설명한다. 그리고 아이가 자라서 자신의 뿌리를 알고 싶어 한다면 찾아볼 수도 있다는 가능성까지 이야기한다.

    이 태도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친생부모가 궁금하다는 것을 현재 부모를 덜 사랑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아이는 자신의 질문을 숨겨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입양에 관한 가족 내 소통은 한 번 끝나는 대화가 아니라 아이의 발달에 따라 계속 변화하는 과정이라는 것이 여러 연구가 공통으로 짚는 지점이다. 그래서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질문에 완벽한 답을 갖는 것이 아니라, "네가 그 이야기를 궁금해해도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일지도 모른다.

    사랑과 상처는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사랑이 온다〉의 이 장면이 입양 이야기만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관계에도 비슷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하면 상처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감사하면 서운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부모를 사랑하면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하나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사랑한다. 그리고 또한 상처받을 수 있다.
    감사한다. 그리고 또한 서운할 수 있다.
    서로 다른 두 마음은 동시에 진실일 수 있다.

    둘 중 하나를 없애야만 나머지 하나가 진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건강한 마음은 복잡한 감정 중 하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마음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한결이 다시 찾아야 하는 것은

    그래서 한결이 규림에게 던진 '아주머니'라는 말이 오래 남는다. 그 한마디를 단순히 엄마를 거부했다는 뜻으로만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지금 한결에게 필요한 것은 '누가 진짜 엄마인가'라는 하나의 답을 빨리 정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를 낳아준 사람에 대한 이야기와 나를 키워준 사람과 함께한 이야기. 그 두 이야기를 자신의 삶 안에 조금씩 함께 놓으면서 "그래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가족은 혈연일까, 함께한 시간일까. 어쩌면 그 질문부터 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질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삶에는 때때로 '그렇지만'보다 '그렇고 또한'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하나의 진실이 또 다른 진실을 지우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