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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데 왜 자꾸 잊어버릴까? 실행기능이 약한 아이의 8가지 특징
육아 심리 · 아동 발달 | 11분 읽기

이런 일이 반복되면 부모도 답답해집니다. "정신을 어디에 두고 다니니?" "집중 좀 해." "할 수 있으면서 왜 안 하는 거야?" 하지만 아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서 못하는 것과, 알고 있는 것을 필요한 순간에 기억하고 계획해서 실제로 실행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일 수 있습니다. 이때 한 번 살펴볼 것이 바로 실행기능(Executive Function)입니다.
실행기능은 쉽게 말하면 해야 할 일을 기억하고, 시작하고, 순서를 정하고, 충동을 조절하며 끝까지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돕는 뇌의 관리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실행기능이 약한 아이는 지능이나 의지와 관계없이 일상에서 유난히 '알면서도 못하는 아이'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공신력 있는 실행기능 연구와 《스마트하지만 산만한 아이》의 내용을 바탕으로, 실행기능이 약한 아이에게 자주 나타나는 특징은 무엇인지, 단순한 게으름이나 산만함과 어떻게 다르게 바라봐야 하는지, 부모가 잔소리 대신 어떤 환경과 방법을 만들어줄 수 있는지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실행기능이란 무엇일까요?
Harvard Center on the Developing Child는 실행기능을 공항의 '항공교통 관제 시스템'에 비유합니다. 수많은 비행기가 동시에 들어오고 나갈 때 관제탑은 무엇을 먼저 착륙시키고, 무엇을 기다리게 하고, 어느 방향으로 보내야 할지 계속 판단합니다. 우리의 뇌도 비슷합니다. 정보를 잠시 기억하고, 불필요한 자극을 걸러내고, 충동을 멈추고, 상황이 달라지면 계획을 바꿔야 합니다. 이러한 실행기능과 자기조절 능력은 학습과 일상생활을 수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실행기능 연구자인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Adele Diamond 교수는 그 핵심을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 핵심 실행기능 | 쉽게 말하면 | 생활 속 예 |
| 작업기억 | 정보를 잠시 기억하며 사용하는 능력 | 여러 단계의 지시 기억하기 |
| 억제조절 | 충동을 멈추고 필요한 행동을 선택하는 능력 | 차례 기다리기, 딴짓 멈추기 |
| 인지적 유연성 | 상황에 따라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능력 | 계획 변경에 적응하기 |
이 기본 능력을 토대로 계획하기, 문제 해결하기, 우선순위 정하기 같은 보다 복잡한 능력이 발달합니다.
실행기능이 약한 아이에게 나타나는 8가지 특징
1. 분명히 들었는데 자꾸 잊어버립니다
"방에 가서 양말 신고, 가방 가져오고, 물병 챙겨." 분명 "네!"라고 대답했는데 조금 뒤 가보면 방에서 다른 것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듣지 않은 것과 들은 정보를 머릿속에 붙잡아두기 어려운 것은 다릅니다. 특히 작업기억이 약하면 여러 단계의 지시를 머릿속에 유지하면서 차례로 실행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지시하기보다, "먼저 양말 신자."처럼 첫 단계부터 짧게 알려주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2. 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시작하지 못합니다
숙제를 해야 한다는 것도 압니다. 그런데 책상에 앉아 연필을 깎고, 물을 마시고, 갑자기 책상을 정리합니다. Peg Dawson과 Richard Guare는 실행기능을 다루면서 과제를 시작하고, 계획하고, 정리하고, 목표를 향해 행동을 이어가는 능력에 주목합니다. "숙제해."보다 "수학책을 펴자."처럼 시작 행동을 아주 작게 만들어주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3. 준비물과 물건을 자주 잃어버립니다
알림장이 없고, 연필을 또 잃어버리고, 숙제는 다 해놓고 집에 두고 옵니다. 저도 어린 시절 이 부분으로 참 많이 혼났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혼난다고 해서 다음부터 물건을 더 잘 챙기게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또 실수하면 혼날 것이라는 생각에 긴장하고 당황하면서, 챙겨야 할 것을 더 놓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저 역시 그 이유를 몰랐기 때문에 '나는 왜 이렇게 덤벙거리지?'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건을 잘 챙긴다는 것은 생각보다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물건의 위치를 기억하고, 필요한 것을 미리 예상하고, 빠진 것은 없는지 확인하고, 적절한 순간에 다시 가져오는 과정에는 작업기억·계획·조직화·자기점검 같은 여러 실행기능이 함께 사용됩니다. 그래서 이런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크게 혼내는 것보다, 덜 잊어버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것일 수 있습니다. 물건마다 항상 돌아가는 자리를 정해두고, 현관이나 책상 앞에 준비물 체크리스트를 붙여두거나, 매일 같은 순서로 가방을 챙기게 하는 것입니다.
"왜 또 잊어버렸어?"가 아니라 "다음에는 잊어버리지 않도록 어떤 장치를 만들까?" 저는 어린 시절의 제 모습을 돌아보면서, 실행기능이 약한 아이에게는 이 질문이 훨씬 필요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4. 시간 감각과 시간관리가 어렵습니다
"10분 뒤에 나가야 해." 아이는 "알았어"라고 대답하지만 10분이 지나도 준비하지 않습니다. 30분이면 끝날 일을 두 시간 동안 붙잡고 있기도 하고, 반대로 한 시간이 필요한 일을 10분이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빨리해!"를 반복하기보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타이머나 일정표 같은 외부 장치를 활용해볼 수 있습니다.
5. 큰 과제를 주면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모릅니다
"방 좀 정리해." 어른에게는 하나의 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옷 정리 → 책 정리 → 쓰레기 버리기 → 장난감 정리 → 책상 정리처럼 수많은 작은 행동이 들어 있습니다. 계획하고 순서를 만드는 것이 어려운 아이에게 '방 정리'는 너무 큰 명령일 수 있습니다. ① 바닥에 있는 옷을 바구니에 넣기 ② 책을 책장에 꽂기 ③ 쓰레기를 버리기처럼 하나의 거대한 일을 실행 가능한 행동으로 바꿔주는 것입니다.
6. 하던 행동을 멈추고 다른 행동으로 전환하기 어렵습니다
게임을 끝내고 씻어야 하는데 움직이지 않고, 놀이터에서 집에 갈 시간이 되면 크게 화를 냅니다. 인지적 유연성은 요구나 우선순위가 달라졌을 때 생각과 행동을 전환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게 해주는 핵심 실행기능입니다. 갑자기 "지금 당장 꺼."라고 하기보다 "10분 뒤에 끝낼 거야." → "이제 5분 남았어."처럼 전환을 미리 알려주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7. 작은 실패에도 쉽게 화를 내거나 포기합니다
문제 하나가 안 풀리면 "나 안 해!" 하고, 게임에서 지면 화가 나고, 생각했던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금세 포기합니다. 감정조절과 실행기능은 서로 밀접하게 작용하지만, 화를 잘 낸다는 이유만으로 '실행기능이 약하다'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수면 문제, 불안, 스트레스, 학습의 어려움 등 다른 원인으로도 비슷한 모습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특히 ADHD 역시 단일 검사로 진단하는 것이 아니며 수면장애, 불안, 우울, 일부 학습장애 등이 비슷한 증상을 보일 수 있어 종합적인 평가가 필요합니다.
8. 똑똑한데 생활에서는 유난히 허술해 보입니다
어려운 문제는 곧잘 풀고 관심 분야에서는 놀랄 만큼 많은 것을 아는데, 숙제를 제출하지 않고 시험공부를 언제 시작해야 할지 모르고 가방은 엉망입니다. "할 수 있으면서 안 하는 것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지만, 지능이 높다는 것과 일상에서 실행기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동일한 문제가 아닙니다. 바로 이런 아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 Peg Dawson과 Richard Guare의 《Smart but Scattered》입니다. 두 저자는 실행기능이 약한 아이들을 오랫동안 연구하고 임상에서 만나며, 부모와 교사가 아이의 부족한 능력을 외부 구조와 전략을 통해 지원하는 접근을 소개해왔습니다.
《스마트하지만 산만한 아이》가 알려주는 관점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저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가 실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책의 직접 인용문이 아니라 내용을 제가 요약한 표현입니다.) 아이가 아직 혼자서 정리하고 계획하고 기억하기 어렵다면, 머릿속에서 하기 어려운 일을 외부로 꺼내주는 것입니다.
| 아이가 막히는 지점 | 부모가 만들어줄 외부 구조 |
| 여러 지시를 잊어버림 | 한 번에 한 가지씩 말하기 |
| 숙제를 시작하지 못함 | 첫 행동 하나 정하기 |
| 해야 할 일을 잊음 | 체크리스트·그림 일정표 |
| 시간 감각이 약함 | 시각적 타이머 사용 |
| 물건을 자주 잃어버림 | 물건의 고정 자리 만들기 |
| 큰 과제 앞에서 멈춤 | 작은 단계로 쪼개기 |
| 활동 전환이 어려움 | 10분·5분 전에 예고하기 |
| 쉽게 포기함 | 난이도를 낮춰 작은 성공 경험 만들기 |
중요한 것은 부모가 평생 대신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부모가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줍니다. 그다음에는 아이와 함께 만듭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아이가 스스로 만들도록 합니다. 외부에 있던 구조를 조금씩 아이 자신의 기술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는 어느 단계에서 자주 막힐까요?
아래 내용은 진단검사가 아닙니다. BRIEF 같은 실제 실행기능 평가도구를 참고하면 실행기능은 여러 영역에서 평가됩니다. 따라서 인터넷 체크리스트에서 몇 개가 해당하는지만으로 정상·이상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아래 질문을 통해 우리 아이가 어느 부분에서 반복적으로 어려움을 겪는지 관찰하는 용도로 활용해보세요.
작업기억
-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지시하면 중간 내용을 잊는다
- 방금 들은 내용을 다시 물어보는 일이 잦다
- 무엇을 가지러 갔다가 무엇을 가져오려 했는지 잊는다
억제·감정조절
-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것을 힘들어한다
- 생각하기 전에 먼저 행동하는 일이 많다
- 작은 실패나 제지에도 감정이 크게 올라온다
과제 시작·지속
- 숙제나 씻기 등 해야 할 일을 시작하기까지 오래 걸린다
- 여러 번 말해야 겨우 시작한다
- 어렵거나 지루해지면 금방 다른 행동을 한다
계획·시간관리
- 여러 할 일 가운데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결정하기 어렵다
- 장기 과제를 미리 나눠서 준비하는 것이 어렵다
- 어떤 일을 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필요한지 예상하기 어렵다
정리·조직화
- 책상이나 가방을 스스로 정리하기 어렵다
- 자기 물건을 자주 잃어버린다
- 필요한 물건을 찾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다
유연성·자기점검
- 갑자기 일정이 변경되면 적응하기 어려워한다
- 한 방법이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생각하기 어렵다
- 자신의 실수를 잘 알아차리지 못하고 반복한다
몇 개 해당되면 실행기능이 약한 걸까요?
여기서 "몇 개 이상이면 실행기능 저하"라고 계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제 임상평가에서는 단순한 체크 개수가 아니라 아이의 연령과 여러 영역의 수행, 부모·교사의 관찰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봅니다. 따라서 체크 개수보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 어떤 영역에서 반복되는가?
- 나이에 비해 어려움이 두드러지는가?
- 얼마나 오래 지속되고 있는가?
- 학교와 가정 등 여러 환경에서 나타나는가?
- 학습·관계·일상생활에 실제로 영향을 주고 있는가?
어려움이 지속되고 일상 기능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면 부모가 체크리스트만으로 판단하기보다 전문가와 상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실행기능이 약하면 ADHD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특히 중요합니다. ADHD가 있는 아이에게 실행기능의 어려움이 함께 나타날 수 있지만, 실행기능의 어려움 자체가 ADHD 진단은 아닙니다. CDC 역시 ADHD를 진단할 수 있는 하나의 단일 검사는 없으며, 수면 문제·불안·우울·학습장애 등에서도 ADHD와 비슷한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숙제를 미룬다 → 실행기능 문제 → ADHD"처럼 연결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이 아이는 지금 어느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라고 보는 편이 훨씬 유용합니다.
"왜 이것도 못해?" 대신 질문을 바꿔보세요
Adele Diamond 교수는 억제조절, 작업기억, 인지적 유연성이 우리가 충동적인 반응을 억제하고 집중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변화된 상황에 적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실행기능은 고정된 능력만은 아닙니다. 훈련과 연습을 통해 개선될 수 있으며, 아동기와 청소년기 동안 발달합니다. 다만 특정 프로그램 하나가 모든 아이의 실행기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는 식의 과장은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또 숙제를 잊어버렸을 때, "왜 이것도 못해?"라고 묻기 전에 질문을 조금 바꿔볼 수 있습니다. 기억하는 단계였을까요? 시작하는 단계였을까요? 순서를 정하는 것이 어려웠을까요? 시간을 예상하기 어려웠을까요? 아니면 하던 행동을 멈추고 다음 행동으로 넘어가는 것이 어려웠을까요?
이 질문 하나만 바뀌어도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때로 더 많은 잔소리가 아니라 아직 혼자 하기 어려운 기능을 대신해줄 작은 구조일 수 있습니다. 체크리스트 하나, 타이머 하나, 물건을 두는 고정된 자리 하나가 그 시작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아이'라고 판단하기 전에, '아직 혼자 해내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아이'인지 한번 살펴보는 것. 실행기능을 이해하는 것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참고자료
· Harvard Center on the Developing Child, "InBrief: Executive Function" — developingchild.harvard.edu
· Adele Diamond, "Executive Functions", Annual Review of Psychology — PMC
· CDC, "Diagnosing ADHD" — cdc.gov/adhd/diagnosis
· Peg Dawson & Richard Guare, Smart but Scattered — smartbutscatteredkids.com
태그: 실행기능, 아동ADHD, 산만한아이, 육아정보, 작업기억, 아동발달, 스마트하지만산만한아이, 부모교육, 자기조절, 소아정신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