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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며칠 전부터 괜히 마음이 무거워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직 시댁에 가지도 않았는데 언제 가야 할지, 언제 돌아올지, 이번에는 어떤 말을 듣게 될지부터 생각합니다. 특별히 큰 싸움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1. 잘 지내야 한다는 말이 오히려 부담이 될 때
우리는 결혼하면 자연스럽게 이런 말을 듣습니다.
- "이제 한 가족이잖아."
- "며느리가 아니라 딸이라고 생각해."
- "친정엄마처럼 편하게 생각하면 되지."
분명 좋은 뜻일 겁니다. 그런데 실제 관계는 말처럼 금방 가까워지지 않습니다. 수십 년을 서로 다른 집에서 살았고, 생활방식도 다르고, 편하게 느끼는 거리도 다릅니다. 그런 두 사람이 결혼을 계기로 갑자기 친정엄마와 딸 같은 사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관계가 가까워지는 만큼 기대도 함께 커질 수 있습니다.
2. 이호선 교수가 명절 고부갈등에서 짚은 부분
이 문제를 찾아보다 2014년 YTN에서 이호선 교수가 명절 고부갈등에 대해 이야기한 방송을 보게 됐습니다. 방송 말미에 나온 표현이 특히 눈에 남았습니다.
각각의 관계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좋다는 취지였습니다. 당시 이 교수는 '딸 같은 며느리', '친정엄마 같은 시어머니'가 되어야 한다는 기대 자체를 낮춰볼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말을 저는 멀어지라는 뜻보다는, 상대를 내 기준의 가족 역할에 억지로 끼워 맞추지 말라는 이야기로 읽었습니다. 가족이 됐다고 해서 서로의 경계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가까움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인정일 수 있습니다.
3. 명절 스트레스가 음식 준비만의 문제는 아닌 이유
물론 명절 노동도 큰 부담입니다.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고, 상을 차리고, 설거지까지 이어지는데 그 일이 한 사람에게 집중된다면 몸이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호선 교수 역시 같은 방송에서 명절 동안 해야 하는 일의 양 자체를 줄이는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모든 일을 그대로 해내려고 하기보다 실제 노동량부터 줄여보자는 현실적인 조언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더 지치게 만드는 것은 때로 일이 아니라 기대입니다.
'가족인데 이 정도 말도 못 하나.'
'내가 이렇게 해줬으니 너도 알아줘야지.'
서로 말하지 않은 기대가 쌓이면 작은 행동도 서운함으로 해석되기 쉽습니다.
4. 나는 무엇 때문에 명절이 힘든 걸까
시댁이 부담스럽다고 느낀다면 모든 관계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하기 전에 한번 나눠서 볼 수 있습니다.
- 나는 사람 자체가 불편한 걸까요, 아니면 반복되는 역할이 힘든 걸까요?
- 음식이나 설거지가 부담스러운 걸까요, 아니면 언제 돌아갈지 정할 수 없는 상황이 더 답답한 걸까요?
- 상대가 나에게 하는 말이 힘든 걸까요, 아니면 '좋은 며느리로 보여야 한다'는 내 마음의 부담도 함께 있는 걸까요?
이 질문은 누가 잘못했는지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문제를 정확히 알아야 바꿀 수 있는 것도 보이기 때문입니다.
5. 모든 관계를 고치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명절이 며칠 남지 않은 상황에서 오래된 고부관계를 완전히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대신 작은 것은 조정할 수 있습니다. 올해는 방문 시간을 미리 이야기해볼 수도 있고, 음식 종류를 한두 가지 줄여볼 수도 있습니다. 부부가 먼저 "이번 명절에서 서로 가장 힘든 게 무엇인지" 한 가지씩 이야기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2015년 명절을 앞둔 다른 YTN 인터뷰에서도 이호선 교수는 명절이 힘든 이유로 해야 할 일뿐 아니라 불편한 이야기를 들을 것이라는 예측 자체도 언급했습니다. 며느리뿐 아니라 시어머니, 남편, 취업준비생 등 여러 사람이 각자의 이유로 명절을 부담스러워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니 "왜 나만 예민하지?"라고 생각하기보다 내가 어떤 순간에서 가장 긴장하는지를 알아차리는 것부터 시작해도 됩니다.
6. 가족이니까 더 필요한 거리도 있습니다
가족관계에서 거리를 둔다는 말을 차갑게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리는 꼭 단절을 뜻하지 않습니다.
사적인 질문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
도움을 기대하기 전에 먼저 묻는 것.
이런 것도 모두 거리이면서 동시에 존중입니다. 가까워야 좋은 관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거리를 찾았을 때 관계가 오래갈 수도 있습니다.
이번 명절에는 상대를 바꾸려는 것보다 한 가지만 생각해봐도 좋겠습니다.
가족이 된다는 것은 경계가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경계를 알고도 곁에 있는 일인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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