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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두려움을 피하는 것이 나를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피하려고 할수록 문제는 더 꼬이고 커졌고, 오히려 직접 부딪쳤을 때 두려움이 허상으로 밝혀지며 그 두려움의 근원마저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마치 개에게 물린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이 개가 있는 곳을 피하듯, 저 또한 목표가 있는 곳을 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먼 길을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그 개는 목줄에 단단히 묶여있어서 저를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어려움은 성장의 방해물이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는 재료였습니다. 몸으로 내 삶의 문제와 두려움들을 직접 부딪치고 나서야 비로소 이 사실을 깊이 믿게 되었습니다.

두려움과 직접 맞닥뜨렸을 때 생긴 일 - 두려움 직면
저는 무엇보다도 중고등학생들과 대화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학창 시절과 멀어진 지 20년이 넘은데다, 미혼이여서 그들과 대화할 기회도 없었지만, 제 청소년기는 남들과 많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학창 시절 오직 생존을 위해 공부도, 친구들과의 추억도 포기한 채 돈만 벌어야 했던 저에게 입시를 준비하는 아이들의 언어와 삶, 사춘기의 모습은 저에게 마치 외계어처럼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사람과 소통하는 것 자체도 버거웠습니다. 교사로서의 경험이나 대면 기회는 커녕, 내 생각을 나누고 소통하는 공동체 생활도 저에겐 처음이었습니다.
처음 2년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포기할 뻔한 순간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단 한명도 나오지 않아 텅 빈 자리를 지켜야 했던 날도 있었고, '이렇게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은데 왜 굳이 나일까?'하며 스스로를 자책한 적도 있었습니다.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도대체 무슨 말을 건네야 하지?'같은 질문들이 불안처럼 꼬리를 물었었습니다.
아이들을 이해하고 싶어서 공부도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포기하고 싶을때가 많았습니다. 두려움에 너무 힘들어 정말 포기하려고 했던 찰라 그 때 제 머리를 스친 깨달음은 "문제를 피하려고 포기하면, 다른 곳에 가서도 더 큰 문제가 온다. 포기하더라도 문제를 해결하고 포기하는 것이 좋다.' 라고요... 그래서 저는 표현은 서툴러도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사랑하기 시작했고, 그 진심은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전달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약간의 어색함은 남아있지만, 더 이상 도망치고 싶을 정도는 아닙니다. 두려움을 거두고 나니, 이제는 아이 한명 한명이 너무나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무대 공포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발표해야 하는 상황만 오면 머리가 하얗게 비어버리고 호흡곤란까지 오는 저였습니다. 그래서 발표하러 앞에는 절대 서지 않는 것이 저의 삶의 원칙이었습니다. 저는 화면으로 대화하는 줌 미팅에서도 상상 이상으로 떨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람들 앞에 서야 하는 자리를 맡게 되었습니다. 정말 피하고 싶었지만, 이 두려움을 넘어서는 것이 제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두려움에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포기할수 없는 환경들이 생겨 그냥 달렸습니다. 발표내용을 통째로 외워가며 강단에 섰고, 절망적인 순간들을 그저 무작정 버텨냈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돌아보면, 뇌과학 연구가 말하는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외상 후 성장이란 트라우마에 가까운 경험을 극복한 이후 삶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이전보다 더 단단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때 뇌에서는 회복 탄력성과 관련된 신경 회로가 활성화되고 전두엽 기능이 강화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제가 겪은 것이 단순한 적응이 아니라, 뇌 구조 수준에서의 변화였던 셈입니다.
흔히 "그냥 버텨라"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고, 저도 그 조언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왜 버텨야 하는지, 버팀이 실제로 나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이해하면 훨씬 견디기 수월해진다는 것도 경험으로 압니다.
의지력은 소모되는가, 훈련되는가
의지력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시각이 있습니다.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의지력을 연료처럼 소모되는 한정 자원으로 보았고, 이를 자아 고갈(ego deplet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자아 고갈이란 결정을 내리거나 욕구를 참는 행동이 반복될수록 의지력이 점점 닳아 없어진다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힘든 일을 하나 끝내고 나면 다음 도전에서 더 쉽게 포기하게 된다는 거죠.
반면 스탠퍼드 심리학자 캐럴 드웩(Carol Dweck)과 동료들의 연구는 이에 반박합니다. 의지력이 한정된 자원이라고 믿으면 실제로 고갈되고, 그렇게 믿지 않으면 고갈되지 않는다는 결과를 도출했습니다. 이 연구는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에 게재된 논문 출처: PNAS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의지력은 신념 그 자체가 생리학적 반응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제 경험상 이 논쟁은 둘 다 맞는 측면이 있습니다. 빚이 쌓이던 시절, 일하지 않으면 굶어죽을 것 같다는 생존 모드가 저를 지배했습니다. 그 불안이 오히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될 대로 되라' 하고 결과에 대한 통제를 놓아버렸을 때, 두려움에서 벗어났고 제가 상상했던 최악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신념이 바뀌자 몸이 반응했던 것입니다.
뇌과학 측면에서 보면, 의지력과 끈기를 담당하는 핵심 뇌 영역이 있습니다. 바로 전대상피질(anterior mid-cingulate cortex)입니다. 전대상피질이란 이마 뒤쪽, 뇌 중앙부에 위치한 구조로 자율신경계, 보상 회로, 운동 계획 영역 등 여러 뇌 부위로부터 입력을 받아 의지력을 생성하는 허브 역할을 합니다. 스탠퍼드 의대 요세프 파르비지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이 부위를 전기로 자극했을 때 피험자들은 "폭풍이 몰려오지만 내가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다고 보고했습니다(출처: Neuron, Cell Press). 이 감각이 바로 우리가 끈기라고 부르는 것의 실체입니다.
- 바우마이스터: 의지력은 소모되는 한정 자원 → 자아 고갈(ego depletion) 이론
- 드웩: 의지력은 무한하며, 신념 자체가 수행 능력을 결정
- 전대상피질(anterior mid-cingulate cortex): 두 이론을 연결하는 신경학적 허브
- 공통 결론: 수면 부족, 정서적 고통, 주의 분산은 의지력을 확실히 낮춘다
전대상피질을 키우는 루틴, 작은 불편함부터
현대 무용가 트와일라 타프(Twyla Tharp)는 매일 반복하는 루틴이 모든 창작의 토대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는 다소 뻔하게 느껴졌는데, 직접 오래 반복해보고 나서야 그 말의 무게를 이해했습니다. 루틴을 일종의 통과 의례로 받아들이면 힘들다는 감각 자체가 달라집니다. 지겨운 반복이 아니라 제 자신과의 약속이 되는 순간부터 뇌의 실행 기능이 다르게 작동한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뇌과학 연구도 이런 변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이전에 운동을 전혀 하지 않던 60-79세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주3회, 1시간씩 6개월간 중강도 유산소 운동을 진행한 연구에서는, 운동 그룹에서 전전두엽을 비롯한 뇌 영역의 구조가 유지되거나 증가하는 변화가 관찰되었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동안 스트레칭과 가벼운 근력운동을 한 대조군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 연구가 "하기 싫은 일을 해서 뇌가 변했다"는 것을 직접 증명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전에는 하지 않던 운동을 꾸준히 시작하고 반복하는 과정이 뇌의 가소성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
이 연구를 보며 '마이크로 석스(Micro-sucks)'라는 개념이 떠올랐습니다. 마이크로 석스란 안전하지만 본능적으로 하기 싫은 작은 불편함을 일부러 선택하는 행동입니다. 운동 마지막에 팔굽혀펴기 10개를 더하거나, 공부를 마친뒤 휴대폰을 보는 대신 5분 동안 배운 내용을 떠올려 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운동 자체가 아니라 익숙한 선택 대신 약간의 저항을 반복해서 넘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작은 선택들이 실행 기능을 담당하는 뇌 회로를 지속적으로 사용하게 만들고, 결국 새로운 행동을 더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
스티브 매그니스(Steve Magness)의 《Do Hard Things》도 비슷한 관점을 제시합니다. 그는 진정한 강함을 만드는 네 기둥 중 하나로 '자아를 넘어선 의미를 찾아라'를 꼽는데, 저는 이것이 나머지 세 기둥인 현실 직시, 몸의 신호 듣기, 대응 능력과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제가 발표 공포를 버텼던 것도, 빚 속에서 신뢰를 옮겼던 것도, 결국 나의 유익이 아닌 사명이라는 더 큰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 이유가 있을 때 전대상피질이 '폭풍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의지력이 정말 훈련으로 길러지나요, 아니면 타고나는 건가요?
A. 의지력을 타고난 기질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전대상피질 연구들은 반복적인 어려운 도전을 통해 이 영역의 부피와 활동량 자체가 변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제 경험으로는 처음엔 너무 힘들어도 2년쯤 지나면 그 두려운 상황이 낯설지 않아지는 순간이 옵니다. 완전히 타고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Q.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면 오히려 번아웃 오지 않나요?
A. 이 지점이 중요한데, '마이크로 석스'는 신체적·심리적으로 안전한 범위 안에서 선택하는 작은 불편함입니다. 매일 모든 걸 최대치로 밀어붙이는 것과는 다릅니다. 전대상피질을 자극한 연구들도 무리한 과제가 아닌, 지속 가능한 수준의 저항이 뇌 변화를 만들었다고 봅니다. 소진될 정도라면 오히려 줄여야 합니다.
Q. 수면이 부족할 때도 의지력 훈련을 해야 하나요?
A. 신경과학 연구들은 자율신경계 기능이 의지력의 토대라는 점에서 수면을 매우 강조합니다. 수면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전대상피질로 가는 자율신경 입력 자체가 약해집니다. 하루 이틀 강행할 수는 있지만, 만성적으로 수면이 부족한 상태에서의 훈련은 효과도 낮고 회복도 느립니다. 기초 컨디션 관리가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Q. ADHD나 특수한 기질을 가진 경우에도 이 방식이 통하나요?
A. ADHD 기질을 가진 분들이 단기 목표 설정이나 규격화된 과정에서 불리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열정과 직관, 몰입이라는 강점이 있어 오히려 자신의 기질에 맞는 방식으로 도전을 설계하면 전대상피질 훈련이 더 강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방법보다 자신의 기질을 존중하는 환경이 먼저입니다.
결론
저는 오랫동안 두려움과 실패를 피하는 것이 나를 지키는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두려운 곳에 발을 들여놓고 나서야, 그 개가 목줄에 묶여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려움은 성장의 방해물이 아니라 전대상피질이라는 뇌의 허브를 단련하는 재료였습니다.
의지력에 대한 논쟁, 즉 소모되는 자원인가 훈련되는 능력인가는 여전히 열려 있는 질문입니다. 다만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신념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몸이 실제로 부딪히는 경험이 쌓일 때 뇌가 달라집니다. 지금 당장 가장 하기 싫은 작은 것 하나를 선택하는 것에서 시작해볼 것을 권합니다. 거창한 결심이 아니어도 됩니다. 그 작은 마찰이 결국 삶의 방향을 바꾸는 연료가 됩니다.
참고:
Andrew Huberman, Huberman Lab Podcast (Willpower & Grit)
장동선, 《뇌는 어떻게 자라는가》
장동선, 세바시 강연 「인생이 꼬였을 때 뇌를 써야 하는 이유」
Twyla Tharp, 《창조적 습관》
Viktor E. Frankl, 《죽음의 수용소에서》>https://www.youtube.com/watch?v=AcGeVRNh1K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