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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어당김이 아니라 예측입니다

미랄 2026. 9. 15. 22:17

목차


    우리는 현실을 보는 걸까? 예상한 현실을 보는 걸까?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오지 않습니다.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습니다. 평소 같으면 별생각 없이 기다렸을 텐데, 하필 어제 그 사람과 조금 불편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러자 마음속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내가 어제 말을 잘못했나?’
    ‘기분이 상했나?’
    ‘그래서 일부러 답을 안 하는 건가?’

    아직 확인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상대방은 회의 중일 수도 있고, 휴대폰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이미 불안해졌습니다. 어제 나눈 대화를 다시 떠올리고, 그 사람의 말투와 표정을 하나씩 되짚어봅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지금 일어난 일을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가 예상한 일을 보고 있는 걸까?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이런 일은 관계에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한 번 크게 아팠던 사람은 몸에서 작은 이상 신호가 느껴져도 덜컥 겁이 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사람들 앞에서 크게 실수했던 사람은 다시 비슷한 자리에 서기 전부터 긴장합니다. 한 번 사업에 실패했던 사람에게 새로운 시작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위험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은 새로운데, 마음은 아주 빠르게 과거로 다녀옵니다. 그리고 과거의 경험을 가지고 현재의 빈칸을 채웁니다.

    이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방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매 순간 세상을 처음 보는 것처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지금 눈과 귀를 통해 들어오는 정보에 그동안 살아오며 쌓아온 경험과 기억을 함께 사용합니다.

    테니스공이 날아올 때도 우리는 공이 완전히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지금 보이는 공의 움직임과 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공이 어디로 올지 예상하고 몸을 움직입니다.

    신경과학에서는 이처럼 뇌가 현재의 감각정보와 과거 경험을 함께 이용해 판단하고 앞으로 들어올 정보를 예측하는 과정을 연구해왔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매 순간 처음부터 모든 것을 계산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이 유용한 능력에는 흥미로운 면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를 바라보면서 동시에 과거를 보고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가 현재의 빈칸을 채울 때

    처음의 답장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확실한 사실은 하나뿐입니다.

    ‘아직 답장이 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모릅니다. 그런데 과거에 비슷한 관계에서 상처받은 경험이 있다면 마음은 빈칸을 그대로 두기가 어렵습니다.

    ‘혹시 나를 싫어하게 된 건 아닐까?’

    반대로 그 사람과 오랫동안 안정적인 관계를 경험해왔다면 같은 상황에서도 ‘바쁜가 보다.’ 하고 지나갈 수 있습니다. 같은 일이 일어났는데 마음속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과거의 경험이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뜨거운 냄비에 손을 데어본 사람이 다음부터 조심하는 것처럼 과거의 경험은 우리를 보호합니다.

    다만 가끔 과거는 참고자료가 아니라 판결문이 됩니다.

    한 번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다 실수한 경험이 ‘그때 발표를 잘하지 못했다.’에서 끝나지 않고, ‘나는 원래 사람들 앞에서 말을 못해.’가 됩니다. 한 번 실패했던 일이 ‘그때 실패했다.’에서 ‘나는 이것을 못하는 사람이야.’로 바뀌기도 합니다.

    어느 순간 과거에 있었던 일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과거는 참고자료일 때 나를 보호하고 / 판결문이 될 때 나를 가둡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새로운 모임에 처음 참석한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들어가기 전부터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낯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그러면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을 사람들의 표정도 신경 쓰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 무표정하게 지나갑니다. ‘역시 나를 불편해하나 봐.’ 긴장하니 먼저 말을 걸기도 어려워집니다. 자연히 사람들과 대화할 기회도 줄어듭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합니다. ‘역시 나는 사람들과 잘 못 지내.’

    처음의 생각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사이에 여러 일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예상했는지에 따라 눈에 들어오는 것이 달라졌고, 그것을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졌고, 그 결과 내가 취한 행동도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행동을 통해 얻은 경험이 처음의 생각을 다시 확인해주었습니다.

    ‘봐, 역시 내 생각이 맞았잖아.’

    우리는 이렇게 자신이 예상했던 것을 현실에서 다시 발견하기도 합니다.

    생각이 현실로 바로 바뀐 것이 아니라, 그 생각과 현실 사이에 내가 보고, 해석하고, 행동하는 과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 좋은 미래를 계속 상상하면 될까?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면 반대의 질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좋은 것을 예상하면 되지 않을까요? 원하는 모습을 계속 그려보고, 성공한 미래를 생생하게 상상하면 그쪽으로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요?

    저도 이 질문이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연구를 찾아보면 이야기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가끔 원하는 미래를 아주 생생하게 그립니다. 살이 빠진 모습, 시험에 합격한 모습,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모습,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진 모습. 그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미래를 많이 상상하는 것과 실제로 그 미래를 향해 움직이는 것은 같은 일일까요?

    심리학자 가브리엘 외팅겐은 이 둘의 차이를 오랫동안 연구해왔습니다. 그의 연구에서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와 이미 모든 일이 잘된 장면에 머무르는 긍정적인 환상은 같은 결과를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잘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행동이 저절로 따라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조금 재미있는 차이가 보입니다.

    ‘운동해야지.’

    라고 생각하는 것과

    ‘월요일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면 운동화를 신고 30분 걷자.’

    라고 생각하는 것은 얼핏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 문장에는 실제 삶이 들어 있습니다. 언제 할지, 어디에서 할지, 무엇을 할지가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렇게 특정한 상황과 행동을 연결해 계획하는 것을 실행의도(implementation intention)라고 부릅니다.

    어쩌면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것은 이미 이루어진 마지막 장면만이 아니라 그곳까지 가는 오늘의 행동인지도 모릅니다.

    생각은 현실을 마법처럼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바라보는 대로 변한다’는 말을 생각할 때 조심하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원한다고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건강한 모습을 상상한다고 질병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성공을 믿는다고 누구나 같은 결과를 얻는 것도 아닙니다.

    삶에는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조건도 많습니다. 환경이 다르고, 가지고 있는 자원이 다르고, 몸의 조건이 다르며, 다른 사람의 선택이나 예상하지 못한 사건도 있습니다.

    그러니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은 사람에게 ‘네가 부정적으로 생각해서 그래.’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생각이 아무런 힘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이 가장 먼저 바꾸는 것은 어쩌면 바깥세상이 아니라 그 세상을 대하는 나의 방식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무엇을 예상하느냐에 따라 눈에 들어오는 것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같은 일을 조금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 해석은 다음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행동이 달라지면 이전에는 만나지 못했던 경험을 만날 가능성도 생깁니다. 그 새로운 경험은 다시 나에 대한 생각을 조금 바꿀 수 있습니다.

    생각이 현실을 마법처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생각과 행동과 경험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삶의 방향을 조금씩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과거는 미래의 판결문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자신에 대해 오래 사용해온 문장들이 있습니다.

    ‘나는 원래 소심해.’
    ‘나는 새로운 걸 배우는 데 느려.’
    ‘나는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해.’
    ‘나는 시작해도 오래 못 가.’

    그 문장들이 아무 이유 없이 생긴 것은 아닐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경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과거의 나를 지울 필요도 없고, 억지로 ‘나는 할 수 있어’라고 반대로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물어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나를 설명하는 문장일까.
    아니면 앞으로의 나까지 결정하는 문장일까.

    한 번 실패했다고 다음에도 반드시 실패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간절히 원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뜻도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현실을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예상하고 있는지, 그 예상 때문에 무엇만 보고 있는지, 그리고 그 생각 속에서 어떤 행동을 선택하고 있는지는 돌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바라보는 대로 변한다’는 말을 조금 다르게 이해하게 됩니다. 바라본다고 세상이 마법처럼 바뀌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방식이 내가 세상을 경험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그 작은 차이가 쌓이면서 이전에는 만나지 못했던 경험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오늘 무언가를 앞에 두고 있다면 한 번 생각해봐도 좋겠습니다.

    나는 지금 눈앞의 현실을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과거의 경험이 예상한 현실을 보고 있는 걸까.

    [이미지 4 — 마무리 카드]
    “바라본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 바라보는 방식이 나의 경험을 바꿉니다”

    다음 글에서는 시선을 조금 다른 곳으로 돌려보려고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아니라, 내 안에서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 속에 들어가 있는 것과 생각을 바라보는 것은 무엇이 다른지 살펴보겠습니다.

    3줄 정리

    1. 뇌는 지금의 감각정보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과거의 경험을 함께 사용해 현재의 빈칸을 채웁니다.
    2. 무엇을 예상하느냐가 보이는 것과 해석과 행동을 바꾸고, 그 행동의 결과가 처음의 생각을 다시 확인해줍니다.
    3. 좋은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언제·어디서·무엇을 할지 정하는 실행의도가 필요합니다.


    참고자료
    Teufel, C. & Fletcher, P. C. (2020). Forms of prediction in the nervous system. Nature Reviews Neuroscience.
    Oettingen, G. & Mayer, D. (2002). The motivating function of thinking about the future: Expectations versus fantasie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Gollwitzer, P. M. 등의 실행의도(Implementation Intentions) 연구.
    김상운, 《왓칭: 신이 부리는 요술》 관련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