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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 피로 — 오바마가 정장 색을 두 가지로 줄인 이유

미랄 2026. 10. 7. 18:25

목차


    하루 종일 앉아 있었는데
    저녁이 되면 지칠 때가 있습니다.

    무거운 것을 들지도,
    먼 길을 걷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저녁 뭐 먹을까?”라고 물으면
    그 작은 선택마저 번거롭게 느껴집니다.

    오늘 한 일을 떠올려 봐도
    눈에 띄는 결과는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피곤하다는 말 뒤에
    자꾸 한마디가 붙습니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그런데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과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같은 말일까요.

    [이미지 1 — 저녁의 무게]

    겉으로 보이지 않는 일

    답장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고,
    읽던 문장으로 주의를 돌리고,
    하고 싶은 말을 잠시 참습니다.

    해야 할 일을 기억하면서
    다른 생각에 빠지지 않으려 애쓰기도 합니다.

    겉으로 보면 모두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는
    주의를 붙잡고,
    반응을 고르고,
    생각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 이어집니다.

    연구자들은 자동으로 나오는 반응을 조절하고
    목표에 맞게 행동하는 능력을 인지 통제라고 부릅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적은 날에도
    이런 조절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결정을 줄이려고 옷을 줄인 사람

    버락 오바마는 대통령 재임 중
    회색이나 파란색 정장만 입는다는 이야기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2012년 《배니티 페어》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결정을 줄이려고 합니다.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결정하고 싶지 않아요. 내려야 할 다른 결정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결정하는 에너지를 집중해야 합니다. 하루 종일 자잘한 일에 정신이 팔려 있을 수는 없어요.”

    물론 대통령의 하루를
    우리의 하루와 같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 말에는 한 가지 전제가 담겨 있습니다.

    결정하는 데도
    쓸 수 있는 양이 정해진 무언가가 든다는 것.

     

    오래 생각한 뒤 달라진 선택

    찾아보니 긴 시간의 정신적 작업과
    뇌의 변화를 함께 살펴본 연구가 있더라고요.

    2022년 《Current Biology》에 발표된 연구입니다.

    참가자들은 여섯 시간이 넘는 동안
    인지 통제를 많이 요구하는 과제 또는
    상대적으로 적게 요구하는 과제를 수행했습니다.

    연구진은 자기공명분광법으로 뇌의 대사물질을 측정하고,
    과제 사이에는 보상과 노력에 관한 선택을 하게 했어요.

    인지적 부담이 큰 집단에서는
    실험 후반 외측 전전두피질의 글루탐산 측정치가
    부담이 작은 집단보다 높았습니다.

    선택에서도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적은 노력이나 짧은 기다림으로 얻을 수 있는 보상을
    더 선호하는 방향으로요.

    오래 집중한 뒤에는
    계속 힘을 들이는 선택이
    덜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결과였습니다.

    뇌에 피로 물질이 쌓인다는 뜻일까

    연구진은 이 결과를 바탕으로
    뇌의 대사 변화가 인지 통제를 계속 사용하는 부담과
    연결될 수 있다는 설명을 제안했습니다.

    다만 ‘생각을 많이 하면 독성 물질이 쌓여 뇌가 지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글루탐산은 정상적인 뇌 기능에 필요한 물질입니다.

    또 이후 실린 학술 논평에서는
    이런 측정만으로 글루탐산이 세포 밖에 쌓였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을 짚었어요.

    관찰된 차이와
    그 차이가 생긴 이유는 구분해야 합니다.

    이 연구는 정신적 피로의 생물학적 배경을 살펴본 단서이지,
    피로의 원인을 하나로 확정한 답은 아닙니다.

    아무것도 안 했다는 말 속에

    이 실험이 메시지를 기다리거나
    걱정이 많은 하루를 그대로 재현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일상의 피로까지
    같은 기전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무엇을 했는가’를 돌아보는 방식에는
    작은 질문을 남깁니다.

    우리는 주로
    끝낸 일과 만들어 낸 결과를 셉니다.

    보낸 문서,
    정리한 방,
    걸은 거리처럼
    확인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반면 집중을 되돌리고,
    판단을 미루고,
    여러 가능성 사이에서 고민한 시간은
    쉽게 빠집니다.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시간까지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닐 텐데요.

    쉬는 동안에도 결정을 하고 있다면

    쉬려고 휴대전화를 켰는데
    무엇을 볼지 한참 고를 때가 있습니다.

    영상을 보다가 메시지를 확인하고,
    다시 돌아와 다른 영상을 찾습니다.

    몸은 쉬고 있지만
    계속 다음 것을 고르는 순간입니다.

    이런 시간이 모두
    피로를 더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지금 내게 필요한 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는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을 보는 시간일까.
    누군가와 편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일까.
    아니면 잠깐 다음 일을 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일까.

    피곤함을 설명하기 전에

    피곤함에는 수면, 몸의 상태, 스트레스 등
    여러 요인이 얽혀 있습니다.

    앉아 있었던 하루가 힘들었다고 해서
    모두 정신적 피로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피곤하다는 감각을 곧바로
    게으름이나 의지의 문제로 받아들일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라는 말 대신,
    오늘 눈에 보이지 않게 했던 일들을 잠시 떠올려 봅니다.

    계속 신경 쓴 일,
    여러 번 마음을 돌려놓은 일,
    쉽게 결정할 수 없었던 일.

    오늘 가장 오래 붙잡고 있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그 일이 눈에 보이는 결과로 남았는지.
    나는 하루를 무엇으로 세고 있었는지.
    ‘별로 한 것도 없는데’라는 말은 누구의 기준이었는지.


    참고자료
    Wiehler, A., Branzoli, F., Adanyeguh, I., Mochel, F. & Pessiglione, M. (2022). A neuro-metabolic account of why daylong cognitive work alters the control of economic decisions. Current Biology, 32(16), 3564–3575.e5.
    Möller, H. E. (2023). Considerations on gradual glutamate accumulation related to cognitive task performance. Journal of Cerebral Blood Flow & Metabolism, 43(3), 476–478. (온라인 선공개 2022년 11월)
    Michael Lewis, “Obama’s Way”, Vanity Fair, 2012년 10월호.

    ※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이며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쉬어도 회복되지 않는 피로가 오래 이어진다면 전문가와 이야기 나눠보시기 바랍니다.